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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years of Unfair Judgement :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centennial anniversary – followtheyellowbri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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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years of Unfair Judgement :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centennial anniversary

3·1독립운동은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고, 한반도 전역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선언하며 봉기한 사건입니다. 이 인포그래픽은 ‘3·1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1906년부터 광복까지 약 40년간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19,000여 건을 수집해 시각화했습니다. 데이터는 국가기록원의 독립운동판결문 페이지를 활용했으며, 이름, 판결날짜, 판결기관, 주문 내용으로 구분해 정리했다. 이후, 수집된 수치 정보는 동일한 판결일로 sorting해 정리하고, 판결 내용에 따라 크게 유죄와 무죄로 구분해 filtering했습니다.

하지만, 수집된 정보 중 이성률(1921년 1월), 김상대(1922년), 이구석(1922년), 이정우(1942년 12월)의 판결 내용은 원본 훼손으로 정확한 날짜 정보를 확인할 수 없어 제외했는데, 정리된 정보를 분포도로 치환해 리뷰한 결과 3·1독립운동 직후 약 3년간의 정보가 전체 중 62% 정도를 차지했고 있군요. 그래서 1920년과 1921년의 유죄 컬러는 노란색 원과는 별도로 파란색과 연두색 컬러를 추가해 구분했습니다.

그래픽의 X축은 날짜를, Y축은 년도를 의미한다. 원 크기은 판결 건수이며, 1일 최대 판결 건수는 316건입니다.(1920년 3월 22일) 그래픽을 통해 독립운동 활동과 일제의 불공정한 법률적 탄압을 볼 수 있는데, 조선총독부는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제약하기 위해 물증이 없어도 관련자는 무조건 구속하거나 투옥시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재판 과정에서 죄가 성립되지 않아 석방되는 경우가 많았다. 3·1독립운동(1919)을 비롯해 105인사건(1911)과 광주학생항일운동(1929) 관련 판결이 대표적으로 진보라색 원은 무죄를 의미합니다.

포스터 배경의 인물 사진은 3·1독립운동의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입니다.


See the original archive page (National Arch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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